20 번째 게시물

   
박청길 님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평화만 외치다 망한사례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 때문에 망한 사례

[평화]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악용하여 간첩 등의 내적들이 [평화공세]를 취합니다. [평화]는 공산화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좌익들의 위장 용어입니다.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에 의해 망한 사례가 많습니다.

(사례1)
2차 대전을 일으키기 위해 히틀러는 세계를 속였습니다. 그는 앉으나 서나 평화를 외쳤습니다. 특히 영국 수상 쳄벌린은 그의 말을 100% 믿고 체코의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양보한 후 “이제 우리는 확실한 평화를 얻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마치 김대중이 국민 몰래 비자금을 적장에게 바치고 돌아와(2000년 6월 15일) 국민을 향해 이제는 한반도에 전쟁이 없다고 선포한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세계인들은 입만 열면 [평화]를 외치는 히틀러의 입만 쳐다보다가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사례2)
1973년, 월남은 월맹이 제안한 "평화협정"에 속아 넘어 갔습니다. 그리고 미군이 철수했습니다. 미군이 나가자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순식간에 점령됐습니다. 동양에서 가장 아름답다 해서 흑진주라는 별명을 가진 사이공, ​제2의 파리고 불리던 사이공 항구도시가 야만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치품들이 있던 자리에 피와 파편이 즐비했습니다. 총 끝 앞에서 목숨을 구하는 자들의 아우성이 타이타닉호의 최후처럼 처절했습니다. 스스로를 지킬 줄 모르는 국민이 당하는 최후였습니다. 하늘이 스스로 돕지 않는 자를 외면한 것입니다.

월맹은 한쪽에선 평화회담으로, 다른 쪽에서는 대남공작으로 집요하게 공산화 전략을 추구했습니다. 1973년 1월 27일, 드디어 키신저는 월맹에 40억 달러를 주고 평화협정서라는 종이 조각을 샀습니다. 그러나 그건 거짓 문서였습니다.

월맹이 사이공을 점령 한 후 5명의 월남 장군들이 자결하고 나머지는 모두 미국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사이공 함락 후, 월남의 군인 경찰은 수용소에 연행됐습니다. 공무원, 지도층 인사, 언론인, 정치인들은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됐습니다. 월남군 부대시설을 개조한 것입니다.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벌이던 교수, 종교인, 학생, 민주인사들은 예외 없이 모조리 처형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층의 월남 국민들은 소형 선박을 이용해 목숨 건 탈출에 나섰습니다.
보트 피플의 숫자는 약 106만 명. 이 중 바다에 빠져 죽거나 해적에게 살해당한 숫자가 11만 명이었고, 살아서 해외로 이주한 사람이 95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프랑스에서 명상의 마을 플럼 빌리지를 설립-운영하고 있는 틱낫한 스님도 월남에서 [평화]를 외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한국을 방문한다 합니다.
월남에서 그가 외친 [평화]는 수많은 월남 국민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로 도망가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평화]주의자를 경멸해야 합니다. 일반 국민이 알고 있는 평화와 간첩이 알고 있는 평화는 정 반대의 개념입니다. 지금 우리가 한국에서 듣고 있는 [평화]는 좌익들의 위장용어입니다. http://www.systemclub.co.kr .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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