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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물고기, 로봇 공무원
박정훈 조선일보 사회정책부장 입력 : 2010.06.23
4대강 사업 참모회의의 한 장면을 보면서 이승만 정권 때 누군가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고 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4대강 수질을 감시할 로봇 물고기 크기가 1m를 넘는다는 보고를 받고 이명박 대통령이 "크기를 줄이라"고 지시했다. 참모들이 기술적으로 힘들다며 난색을 보이자 이 대통령은 "기능을 여러 마리로 나누면 된다"며 '편대 유영(游泳)'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에선 로봇 물고기들이 서로 통신하며 역할 분담하는 기술이 개발됐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지시를 받은 참모진은 "대통령 감각이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만약 민간 기업이었다면 4대강 사업팀과 청와대 참모들은 당장 파면감이다. 자기가 책임지고 먼저 아이디어를 짜내야 할 전문가들이 문외한인 대통령의 한마디에 화들짝 놀라 감탄사나 토해내고 있다. 정부 분위기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정부 안에서 4대강 사업은 갈수록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존재가 돼 가고 있다. '대통령 프로젝트'로 통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해 누구도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부작용을 보완하자며 건설적 제동을 거는 사람이 없다. 청와대 참모진부터 국토해양부 실무자까지 오로지 대통령의 뜻을 일사불란하게 실행하는 '로봇 공무원'들뿐이다.
찬반 논란에도 불구, 강을 살려야 한다는 4대강 사업의 취지 자체엔 많은 국민이 공감한다. 홍수·가뭄 조절 기능을 강화하고 수질을 개선하는 일은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중차대한 국토 개조사업을 맡은 공무원들이 이처럼 위쪽만 쳐다보고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걱정이 많은 것도 공무원들의 이런 행태 때문이다.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 가을만 해도 정부·여권 관계자 중에 속도조절론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도 일부 공사는 추진 속도를 늦추자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위험 공사는 차기 정권으로 미뤄야 한다"는 말이 고위 관계자 입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공무원들은 입을 다물었고 신중론은 자취를 감췄다. 작년 가을 이 대통령이 "속도를 더 내라"는 지침을 내리면서 달라졌다는 게 관가(官街) 정설이다. 대통령 뜻을 확인한 이후 모든 부처가 오로지 공기(工期) 단축을 위한 총력전 체제로 전환했다. 환경 관점에서 견제해야 할 환경부와 안전을 책임진 행정안전부, 경제적 타당성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이 일제히 속도전 대열에 합류했다.
그 결과 4대강 사업은 곳곳에서 법·규정 위반과 절차 무시 시비를 부르고 있다. 정치 공세가 아닌 것만 들어도 이런 것들이 있다.
―준설토 적치장이 소음·먼지 방지시설 없이 운영되고 있다. '소음진동관리법' 위반이다.
―굴착기로 강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멸종위기종 '단양쑥부쟁이'가 뿌리 뽑히는 사례가 확인됐다. '야생동식물보호법' 위반이다.
―환경영향 평가를 4개월 만에 약식으로 끝냈다. 통상 4계절에 걸쳐 1년 간 진행해온 관행을 무시한 것이다….
정부는 사소한 실수라며 넘겼으나 다른 사안에선 그토록 엄격하게 법의 잣대를 들이댔던 정부였다. 유독 4대강 사업에서만 법·절차 위반에 관대하니 속이 들여다보인다.
4대강 논란은 결국 '대통령 직할 프로젝트'로 추진되는 데서 비롯된다. 대통령이 큰 틀을 짰으니 이제 구체적인 사업 추진은 총리와 각 부처에 넘겨주는 게 좋겠다. '통치' 색깔을 빼고 '행정'의 옷을 입혀야 4대강 사업이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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