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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선일보 기고 난에 영국 '더타임즈' 서울특파원 앤드류 새먼기자가 쓴 <국토 '과잉' 관리의 위험>이란 글이 실렸습니다. 그는 "내 생각에 한국이 가진 최고의 인프라는 사람이 일군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것이다. 산맥의 억센 등뼈와 국토의 동맥인 구불구불한 강들을 보라. 이 멋진 자원은 그러나 위험에 처해 있다. 파괴의 위험이 아니라 과잉 관리의 위험이다. 과잉 관리는 자연을 친절하게 살해하는 방법"이라고 4대강 살리기 정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과 한국인을 되돌아 보게하는 글이라 믿습니다. 전문을 옮겼습니다. 함께 읽어보며 우리 자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토 '과잉' 관리의 위험>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이 나라의 가장 훌륭한 인프라가 뭔지 물어보라. 아마 '이동통신'이나 '초고속 인터넷' 같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나는 감히 의견을 달리한다. 내 생각에 한국이 가진 최고의 인프라는 사람이 일군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것이다. 산맥의 억센 등뼈와 국토의 동맥인 구불구불한 강들을 보라.
이 멋진 자원은 그러나 위험에 처해 있다. 파괴의 위험이 아니라 과잉 관리의 위험이다. 과잉 관리는 자연을 친절하게 살해하는 방법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연환경을 업그레이드하겠다며 내놓는 각종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자연을 육성하고 보호하기보다는 지배하고 착취하려는 욕구가 두드러져 보인다. 산자락에 계단을 만들고 산길을 따라 밧줄을 둘러친 통행로를 깐다. 이른바 '녹지'라는 공간에 가도 풀보다 콘크리트가 많다. 공원보다는 광장을 만드는 게 우선순위다. 등산 갔다가 산꼭대기에 공중전화 부스가 설치된 걸 본 적도 있다. 산정에 스피커를 설치해 나무 사이로 음악이 쩌렁쩌렁 울리게 트는 곳도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주말이면 딸을 데리고 효창공원에 가곤 했다. 요즘은 안 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효창공원은 언덕배기를 따라 독립운동가들의 묘소가 자리 잡은 고즈넉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개발'이 됐다. 공원부지가 구획되고 미술작품이 설치되고 돌과 콘크리트로 길을 깔았다. 사유에 잠긴 채 소요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더는 아닌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사유방식과 충돌하는 것이다. 영국인, 이탈리아인, 일본인들은 주의 깊게 계획해서 정원을 조성했다. 정확하기가 거의 수학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은 자연에 직접 손대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 잘 가꾼 느낌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인 듯한 느낌이 들도록 정원을 디자인했다.
한국 정부는 4대강 사업 계획을 야심적으로 세우고 있다. 농업지역을 건강한 레저 공간으로 변모시켜서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발상 그 자체에는 박수를 보낸다. 한국은 아직 레저 자원이 부족한 까닭이다. 전반적인 국가 발전 수준보다 뒤떨어져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인들 귀에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나 나는 민물에서 헤엄치는 걸 즐긴다. 한국에서도 깨끗한 강에 뛰어들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래도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콘크리트를 자연에 쏟아붓게 될 것인가? 얼마나 긴 자전거도로가 깔릴 것인가? 중요한 건 산이지 산으로 가는 도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건 강이지 강둑에 들어설 시설이 아니다.
나 개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개발 반대론자가 아니다. 서울에서 가장 멋지고, 동시에 가장 저평가된 명소가 남산순환도로와 북악스카이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세계 각국 수도 가운데 도심 한복판에 그토록 풍치 좋은 산악도로를 닦아놓은 도시는 서울뿐이라고 생각한다. 청계천도 멋지다. 청계천은 도심 경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친환경적인 도시 개발의 걸작으로 갈채를 받을 자격이 있다.
또 한국은 청계천보다 더 크고 더 멋진 자연 개발사업에도 성공한 바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최근 수십년 동안 아시아에서 펼쳐진 각종 환경정책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성공 사례 중 하나가 한국의 녹화사업이다. 한때 황폐했던 산야에 신선한 삼림이 카펫처럼 깔렸다. 모두들 간과하는 이 성공 사례를 통해 이 나라에는 자연을 섬세하게 보호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매주 열심히 산에 다니는 중년 이상 한국인들은 헐벗었던 옛 국토를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이들은 도심과 사이버 공간에서 놀기 좋아하는 젊은 세대보다 자연을 더 잘 즐길 줄 알 것 같다. 어쩌면 도시화된 젊은 세대들은 '자연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야생(wildness)을 도려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한국의 자연뿐 아니라 한국의 정신에도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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